News

총연합회 뉴스

오늘부터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세요!

남들과 조금 다른 휴가, 중국으로의 의료봉사

남들과 조금 다른 휴가, 중국으로의 의료봉사

[중국 한센인마을 의료봉사활동 참가 후기]

 

 

 

행동하는의사회가 지난 8월 1일부터 7일까지까지 2010년 중국 한센인마을 의료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지난해에 이어 중국 운남성 한센인치유자마을(샤오슈이탕)에서 내과, 외과, 치과 진료 등 의료활동과 마을주민과의 만남을 기념하기 위한 마을잔치을 열었다. 이번 봉사활동에는 의사 5인, 간호사 2인, 약사 1인, 의료관련학과 학생 17명(총인원 25명)이 참여했다.  -편집자주

 

△ 행동하는의사회가 8월 1일부터 7일까지 중국 한센인 마을 의료봉사활동을 다녀왔다.

ⓒ 행동하는의사회

 

 

중국에서 돌아온 나는 뭐가 변해있을까? 머리 붙이자마자 끝없는 림보의 세계로 빠져버림, 주위에서 들리는 부산 사투리가 간혹 중국어처럼 들림, 북적북적한 병원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 혼자 고요하기. 지난 파병과 여행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먼 타국에서의 변화는 그렇게 바로 피부로 느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살면서 문득 문득 떠오르는 그래서 미소 짓고, 그러면서 남들과 조금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중국의료봉사를 신청하면서 내심 뿌듯했다. 졸업을 하고 4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갈고 닦은 주사 실력을 정말 뜻 깊은 곳에 쓰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웬걸, 주사는 한방 밖에 놓지 못했다. 그것도 깔끔한 IM(근육주사)으로 말이다. 이것도 거의 진료가 막을 내리는 가운데 내과진료를 맡은 행동하는의사회 최창수 대구 대표님이 직접 놓아도 될 것을 먼 타국에 와서 실력 발휘 못하는 내가 측은하셨는지, 저 멀리서 ‘경민아!’라며 나를 불러 타마돌(진통제)을 놓으라고 하셨다. 한 번뿐이지만 정성을 다해 놓고 싶었다.

할머니는 몸이 너무 불편하신 나머지 제대로 눕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고 나는 침상에 적당히 앞으로 할머니를 눕힌 채 엉덩이 바지를 내리고, ‘톡톡톡’ 엉덩이를 두드리며 주사를 놓아드렸다. 사실 엉덩이를 두드리는 것이 순간 근육을 수축시켜 주사 바늘이 들어갈 때 더 아프게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의 것을 해드리고 싶었다. 다행이 할머니는 조금 밖에 안 아프다고 하셨다. 한 번의 경험이지만, 내가 앞으로 만나게 될 환자들에게 매 순간 정성을 다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길 빈다.

아쉬운 일도 있었다. 사전 단체 엠티 이전부터 내가 예진실(예비진료실)을 맡게 된 것을 알고 나서도 내가 예진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한 것이 없었다. 정말 누구 말처럼, 숟가락만 드는 기분이랄까. 진료 시작 하루 전날엔 미리 준비된 예진 카드를 보고서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준비된 예진이 꼭 성공적으로 이뤄져야한다고 다짐했다. 진료 첫날 당일 각각의 임무가 떨어진 상황에서 예진코너는 예상보다 늦게 차려졌고 진료를 받기위해 오전 9시에 맞춰서 찾아온 주민들은 기다려야 했다. 중국 사람들이 ‘만만디’가 몸에 베여있다고는 하지만 통역자원활동을 한 동권이 말대로 세상에 기다리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마을로 들어오는 날, 마을 어르신들께서 소 네 마리를 끌고 와 주신 일이 생각이 났다.

 

△ 의료봉사단이 마을 주민의 혈압을 측정하고 있다. ⓒ 행동하는의사회

△ 이동하는 중 차가 츩 웅덩이에 빠지기도 했다. 차를 빼고 기념촬영.

ⓒ 행동하는의사회

 

 

걱정과는 달리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우리 의료진들 덕분에 의료봉사는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돌아 다시 마을 밖을 나갈 때는 짐차가 흙 웅덩이에 빠져 오고 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곡괭이 짊어지시고 먼 길을 우리를 도우려 나오셨다. 마을을 나오는 길에서도 많이 도와드린 것도 없는데 괜히 도움만 받고 온건 아닌지, 죄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을을 들어오기 전부터 나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 곁에서 도움 주시고 얼굴 한번 구기시지 않으시는 어르신들을 보고 우리가 이들을 도우러 왔다기보다, 우리가 함께 있기 위해 서로가 달려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마을에 있었던 3일이라는 시간은 중국을 오가는 시간에 비해 너무 짧았다. 3일이라는 시간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의료적인 활동이 집약적으로 이루어졌지만, 3일이라는 의료봉사 시간 앞뒤로 학생 참가자만이라도 마을에 있는 시간을 더 늘려서 중국에 있는 캠퍼들과 다른 의미있는 봉사활동을 더 했었더라면 돌아오는 길, 쿤밍에서의 며칠 밤에도 그 마음이 한결 더 가벼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행동하는의사회

 

 

얼마 전 중국에서 우리의 입과 손과 발이 되어준 동권이가 클럽에 남긴 글을 봤다. 우리가 쿤밍을 떠나는 날, 늦어진 공항 도착시간 때문에 우리를 마지막까지 마음 졸이며 보냈던 그가 지금 혼자서 여행 중이란다. 그리고 세계적인 절경을 가진 ‘리장’이라는 곳을 다녀와서도 그 여행이 단팥 없는 찐빵 같다고 했다. 물론 우리가 중국을 다녀온 이유는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가운데, 6월부터 해단식이 이루어지는 이 시간까지 서로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함께해주었던 형님, 누나, 친구, 동생들이 없었다면, 내 맘은 ‘I have got nothing.’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 덕분에 나는 살아가면서 솟아나는 한 줄기 힘을 얻었다. 앞으로도 혼자가 아닌, 뒤에서 함께 걱정해주고 때론 한 발짝 조금은 늦게, 세상과 발 맞춰 나가야겠다.

 

 

 

 

http://www.prometheus.co.kr/articles/102/20100824/201008241644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