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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자원입대한 정영택씨

 6·25때 자원입대한 정영택씨

 "나 때문에 형이 빨치산에 피살"… 마음의 짐 덜기 위해 형수 찾아

 

  

"전남 광산군 서창면 평촌리가 고향인가요?" "예."

"17세 때 결혼은?" "예."

노신사의 두 눈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남편이 정준택씨가 맞나요." "예, 맞아요."

"그분이 제 형님이에요. 형수님!"

지난 25일 오후 전남 고흥군 도양읍 국립소록도병원 6층 '사랑의 집' 중증환자 병동. 6·25 때 친형을 잃고 형수를 찾아 나선 정영택(83·부산 장전3동)씨의 평생 회한(悔恨)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정씨는 64년 만에 만난 형수 최막례(81)씨의 두 손을 꼭 잡고 흐느꼈다. 최 할머니는 시력을 잃고, 치매로 대화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날 시동생의 질문에는 또렷하게 답했다. 최 할머니는 1962년 12월 한센병으로 소록병원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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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 오후 전남 고흥 국립소록도병원 6층 ‘사랑의 집’ 중증환자 병동에서 정영택(83)씨가 병상에 앉아 있는 형수 최막례(81)씨를 부여잡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홍복 기자 powerbok@chosun.com

 

 

"저 때문에 형이 6·25 때 빨치산에 의해 무참하게 돌아가셨어요. 죽기 전에 꼭 형에게 보답한다는 심정으로 형수를 찾고 싶었습니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정씨는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냐"는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홀로 소록도로 찾아왔다. 정씨는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그동안 간직해온 형 준택씨의 흑백 사진이었다.

전남 담양에 살던 그의 형(정준택)은 1947년 8월 열일곱 살 난 최막례씨와 혼인했다. 전남 광산군 서창면 처가에서 식을 올리고 처가살이를 했다. 하지만 6개월 만에 형은 아내가 '천형(天刑)' 한센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혼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뒤 형은 6·25가 터지면서 빨치산에게 붙잡혀 총살당했다.

"내가 국군에 자원입대했기 때문에 우익 집안이라며 형을 처형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1949년 육군 헌병대에 입대했던 정씨는 1951년 휴가를 나와 형의 소식을 듣고 가슴을 쳤다고 한다.

"저 때문에 형이 죽었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라도 꼭 형수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씨는 형수의 친정 동네를 찾아갔지만, "소록도로 갔다"는 말 외에는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정씨는 1976년 육군 상사로 제대한 뒤 부산에 정착해 한진중공업 등에서 일했다.

그러던 지난 4월 정씨는 소록도에 있는 고흥경찰서 녹동파출소에 전화해 "형수를 찾아달라"고 연락했다. 아는 것은 최씨이고, 17세 때 결혼한 광산 출신의 한센병 환자라는 것뿐이라 했다. 녹동파출소 공석재 경위는 경찰 전산망을 조회하고, 소록병원의 도움을 얻어 최 할머니를 찾아냈다. "이젠 여한이 없습니다. 형님! 이제 편히 눈 감으세요."

최 할머니도 정씨의 손을 맞잡았다. 보이지 않는 눈이지만 할머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