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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센병 걸렸을지 모른다고 청혼 거절하자 자기가 고쳐주겠다며 결혼 설득"

"내가 한센병 걸렸을지 모른다고 청혼 거절하자 자기가 고쳐주겠다며 결혼 설득"

 

故 이종욱 WHO 前총장, 고인으론 두번째 서울대 名博… 부인 가부라키 여사 인터뷰

결혼 27년동안 한번도 다툰 적 없어, 제네바서 작은 월세방 살며 관용차 대신 1500㏄ 이용

남편이 마련해준 페루 봉사활동 이어갈 것

"남편한테 가서 '당신 박사 학위 받았어'라고 알려줘야죠. 멀리 하늘에서 남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고(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전 사무총장의 부인 가부라키 레이코(鏑木玲子·66) 여사가 17일 서울대에서 열리는 남편의 명예의학박사 학위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 16일 한국을 찾았다.

이 전 총장은 지난 1976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와이대에서 전염병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는 없었지만 20여년간 WHO에서 근무하면서 질병을 예방하고 환자를 돌보는 데 힘써왔다. 소아마비 발병 비율을 1만명당 1명으로까지 떨어뜨려 '백신의 황제'라는 칭송을 들었다.

서울대 관계자는 "이 전 총장이 세계 질병 퇴치에 헌신한 공로를 기려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장에 대한 명예박사 학위 수여는 서울대 개교 이래 고인(故人)으로는 두 번째다. 첫 번째는 고(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었다. 가부라키 여사는 학위 수여식 뒤에 대전 현충원에 있는 남편의 묘를 찾아갈 예정이다.

이날 서울 중구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가부라키 여사는 "남편은 학자로서, 국제기구의 수장으로서만이 아니고 남편으로서도 최고였다"고 말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 커피숍은 특별한 장소예요"라고 했다. "이곳에서 첫 데이트를 했어요. 약속 시각보다 2시간쯤 늦게 나타나 허둥대던 남편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이 전 총장이 모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게 된 것에 대해선 "모교가 주는 상이라 기뻐할 거예요. 그렇지만 남편은 학위에 연연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어떻게 하면 인류를 질병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지만 고민했던 사람이니까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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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질병 예방에 앞장섰던 고(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전 사무총장의 부인 가부라키 레이코 여사. 10년째 페루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가부라키 여사는 서울대에서 열리는 남편의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 16일 입국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두 사람은 지난 1976년 경기도 의왕시의 한센병 환자촌 '라자로 마을'에서 봉사 활동을 하면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날짜도 기억해요. 2월 9일. 잘생긴 청년이 식당으로 물건을 찾으러 들어왔어요. 그 사람이었지요."

가부라키 여사는 이 전 총장의 청혼을 거절했었다고 했다. "제가 한센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남편은 '내가 고쳐주면 된다'고 저를 설득했어요."

이 전 총장은 다정다감했고, 또 존경스러운 사람이었다고 했다. "'WHO 예산에는 어려운 나라에서 보내온 자금도 있는데 낭비할 순 없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 줄곧 제네바 인근 작은 월세방에 살며 관용차 대신 1500㏄ 소형차를 탔어요."

가부라키 여사는 "남편은 WHO 일로 출장이 잦아지자 내가 집에서 외로워하는 것을 걱정했다"면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는 내 소원대로 남미 페루에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는 자리를 알아봐줬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남편이 페루에 마련해준 봉사 활동 자리는 지금도 지키고 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라고 했다. 그는 지난 2002년부터 페루의 자선단체에서 일하면서 인류애를 실천했던 남편의 뒤를 잇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셈이다.

이 전 총장은 2006년 5월 스위스 제네바의 사무실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61세로 숨졌다. 가부라키 여사는 "아무리 바빠도 주말이면 주먹밥과 삶은 달걀을 가지고 드라이브를 나섰고, 각종 기념일도 빠뜨리지 않았던 사람, 결혼 생활 27년 동안 단 한 번도 다툼이 없었던 사람이 떠난 고통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가부라키 여사는 "남편이 떠난 지 6년이지만, 시간이라는 약은 내게는 듣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눈은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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